[이와오이] 오늘 아침은
※ 배구선수 이와이즈미 X 모델 오이카와
※ 픽션이므로 글에 나오는 설정들은 가볍게 넘어가 주세요!
※ 히나 님이랑 같이 푼 썰로 써봤습니다.
으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곤잠에 빠져 있던 오이카와가 뒤척거렸다. 우으, 눈부셔…. 닫혀서 들릴 줄 모르던 눈꺼풀이 드디어 움직였다. 깜박깜박. 졸음을 떨쳐내려는 얼굴이 부산스러웠다. 하품 한 번을 마지막으로, 꼼지락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오이카와가 아직까지 세상모르게 잠든 이와이즈미를 바라봤다.
“아앗, 못생긴 얼굴.”
키득키득. 이와이즈미가 들었다면 당장에라도 눈썹을 찌푸릴 소릴 중얼 거린 오이카와가 제 허리에 둘러진 단단한 팔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흥얼흥얼. 뭘 생각하고 있는지.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이와오이] 오늘 아침은
W. 블리
흐음…. 냉장고 앞에 선 오이카와의 얼굴이 답지 않게 진중해 보였다. 톡톡. 제 말끔한 턱선을 두들기는 손끝이 고민을 담고 있었다. …뭘 해줘야 하지? 오이카와가 고개를 기울였다.
오이카와가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부엌에 나와 있는 풍경이란 이 집에선 그리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부엌에는 언제나 이와이즈미가. 이건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전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세워졌던 공식 같은 거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절대 부엌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오이카와도 딱히 부엌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란 남자는 제대로 무언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 중에 요리가 포함 되어 있는 건 이쯤 되니 당연한 거였다.― 오이카와는 스스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을 탄생 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와이즈미의 말에 따라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는데.
그런데도 오늘 아침, 오이카와는 부엌에 있었다.
냉장고 앞에서 답지 않게 진중한 얼굴로 이리저리 고민하던 오이카와가 이네 밝은 얼굴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간단하게 볶음밥이면 그래도 어찌저찌 모양은 나오지 않을까. 재료를 꺼내는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조금 맛이 없다고 해도 분명 이와쨩은 다 먹어 줄 거야. 아직까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을 제 연인을 생각하니 이젠 저절로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
흐음. 얼추 재료들을 다 꺼낸 듯, 오이카와가 뿌듯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봐. 오이카와 씨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싱크대 물을 틀며 야채들을 닦아내는 손길이 익숙해 보였다. 야채를 닦는 거야 매일 이와이즈미 옆에서 도와줄 것이 없냐며 기웃거릴 때마다 해왔던 일이었다. 오이카와에게 이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물기까지 탁탁 털어낸 오이카와가 주섬주섬 도마와 칼을 꺼내들었다. 어떤 크기로 잘라야 하지…. 칼을 집어든 오이카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작게 자르면 되려나. 짧은 고민을 끝마친 오이카와가 도마 위에 당근을 올렸다. 어차피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겠지. 가볍게 생각하고 칼을 가져다 댄 오이카와가 이네 당황스러운 얼굴로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이거, 이거 왜, 안 빠져? 칼을 들어 올린 오이카와가 그대로 따라 올라오는 당근을 심란한 얼굴로 바라봤다. 왜 따라 올라오는 건데?! 이쯤 되니 자꾸만 눈치가 보였다. …이와쨩, 아직 자지? 안방 문을 돌아본 오이카와가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안 잘리는 건데!”
도마에 당근이 꽂힌 칼을 통통 거리던 오이카와가 씩씩거렸다. 빠지지도 않고 잘리지도 않고! 도마에 칼을 퉁퉁 거리는 소리가 커져갈수록 오이카와가 씩씩거리는 소리도 커져갔다. 빠지기라도 해라, 좀! 칼도 제대로 못 쥐고선 한참을 끙끙거리던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단잠을 깨운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이와이즈미가 묘하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자꾸만 잠에서 깰 듯 뒤척거렸다. 자꾸 무슨 소리야…. 찡그린 얼굴이 잠에서 깨고 싶지는 않아 보였다. 자연스럽게 제 옆자리를 더듬거리던 이와이즈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결국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오이카와?”
자리에서 일어선 이와이즈미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침실을 살폈다. 뭐야, 어디 갔어? 하품을 찍찍 하며 침대에서 내려온 이와이즈미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침실을 나서게 된 건,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들린 오이카와의 비명 소리 때문이었다. 이와이즈미가 한 걸음에 달려 나갔다.
“뭐야! 오이카와, 너 괜찮냐?”
“이, 이, 이와쨩…?”
한 걸음에 달려 나와 거실을 훑어본 이와이즈미가 잠시 멈칫했다. …없잖아. 그럼 대체…. 멈칫 하는 것 같던 이와이즈미가 얼굴을 찌푸린 채로 부엌을 바라봤다. 이 멍청이가, 부엌에는 들어가지 말라니까. 역시나 급히 부엌으로 들어가 보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바닥을 굴러다니는 칼에 당근이 꽂혀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요상한 얼굴을 하던 이와이즈미가 쪼그려 앉아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봤다. 이 조그만 머리로 뭘 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는 부엌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빠르게 오이카와를 훑었다.
“일어났어?”
“그럼 그렇게 시끄러운데 안 일어나?”
“이와쨩 잘 자고 있었으니까….”
“그게 문제야? 다친 데는?”
없습니다…. 오이카와를 훑어보던 이와이즈미가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잘못을 하면 꼭 들킬 때까지 모른 척 하던 녀석이었으니 멀쩡해 보인다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었다. 이와이즈미가 묘하게 제 시선을 비끼는 것에 눈썹을 까딱였다.
“뭐야, 똑바로 말해. 다친 데.”
“어, 없는데요….”
“자꾸 거짓말 할 거냐? 다친 데.”
“없습니다만….”
“이게 진짜, 뭐야, 너 손!”
몇 번을 물어도 똑같은 대답에 찌푸려진 눈썹이 펴질 줄을 몰랐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진짜 똑바로 말 안 하지. 진짜로 괜찮습니다만…. 자꾸만 괜찮다며 시선을 피하는 것이 괜찮기는 개뿔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손에서 새어 나오는 새빨간 것을 보며 기겁을 했다. 야 인마, 이래놓고 뭐가 괜찮다는 거야! 으앗?!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나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어느새 소파에 걸터앉아 이와이즈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오이카와가 눈을 굴렸다. …큰일 났네.
“너 인마, 다쳤으면 다쳤다고 말을 하던가. 애초에 요리도 못하는 녀석이 칼을 이상하게 잡으니까 다치는 거 아니야. 내가 부엌에 들어가지 말랬지? 이렇게 다치고 싶냐?”
“…헤헤.”
“뭘 잘했다고 웃어 인마.”
소독약과 데일밴드를 들고 온 이와이즈미가 피가 멈춘 손에 치료를 해주며 늘어놓은 말이었다. 뭐가 그리도 속상한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 손가락은 따끔거리는데 기분이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걱정 해주고 있다는 게, 걱정 받고 있다는 게 좋았다.
“히히, 이와쨩 완전 좋아해.”
“오냐.”
“진짜진짜 좋아해.”
“그래.”
“좋아…!”
쪽. 언제 치료를 끝낸 건지 말끔히 뒷정리까지 끝낸 이와이즈미가 자꾸만 조잘거리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입술을 부볐다. 알겠으니까 부엌에 좀 그만 들어가라. …응. 뭐가 먹고 싶은데. …어어, 나는 볶음밥을 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저걸…. 응? 됐다. 이와이즈미가 동그랗게 뜬 눈을 바라보다 뒷말을 삼켜냈다. 뭐 어때, 요리 좀 못할 수 있지. 내가 하면 되니까 얌전히 좀 있어라.
부엌에서부터 사랑스러운 웃음소리가 퍼져나가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