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사랑니

[이와오이] 하루의 끝

Adorably 2017. 5. 3. 22:55

※ 선수 트레이너 이와이즈미 X 배구 선수 오이카와

※ 글에 나온 설정은 맞는 게 없으므로(...) 가볍게 넘어가 주세요!

※ 이오의 날 기념으로 써보려고 했던 거지만(...) 이제서야 완성했네요(._.)

※ 는 사실 뒤에 더 있는데 뒷부분은 또 언젠가(...)











[이와오이] 하루의 끝

W. 블리









  짜증나. 짜증나네. 어쩌지, 짜증나는데. 진짜 어쩌지.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다리를 덜덜 떨던 이와이즈미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제 핸드폰을 흘깃 거리면서 자꾸만 부산스럽게 굴었다. 이와이즈미가 지금처럼 정신없이 다리를 달달 떨어 대는 건, 옛날부터 초조할 때마다 나오던 버릇이었다. 평소라면 답지 않은 모습에 의아해 할 사람이 곁에 있었을 테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오늘 이와이즈미의 곁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것에 다시 얼굴을 찌푸리던 이와이즈미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멍청한 자식이, 내가 올 하반기 계획 회의―라고 하기에도 뭐했지만―에 불려 갔을 때 몰래 빼내가? 돌아오기만 해봐라. 다짐한 대로 따지기 시작하면, 정작 그 화를 받아내는 본인은 무슨 이유에서 화를 내는지 알아먹질 못할 것이 뻔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웃기게도 지금까지 이어진 ―오이카와의 말마따나― 악연을 떠올리며 숨을 골랐다.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치는 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까부터 부산스럽게 달달 떨던 다리도 얌전히 두고선 몇 번을 숨을 들이 쉬고 내쉬던 이와이즈미에게 아직까지 얌전하기만 한 제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까득. 거실에 다시 한 번 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화를 삭이는 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귓가 너머로 '이와쨩, 그러고 있으면 안 그래도 못 생긴 얼굴 더 못 생겨져!'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이와이즈미가 답지 않게 이렇게도 화를 내는 건 웃기게도 별거 아닌 일이었다. 아마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옆에 있었다면 이런 별것도 아닌 걸로 화낸 거냐며 귀엽다고 달라붙었을 터였다. ―물론 이와이즈미는 제게 달라붙어 오는 오이카와를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떼어 내려고 했겠지만. 그것도 결국엔 제 품 가득 끌어안았을 거다.― 그 정도로 별거 아닌 이유였다. 그저 이 모든 원인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고, ―이건 오이카와도 인정했을 터였다.―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빛이 나던 그때 그대로 대학 때부터 실업팀에서 배구를 하고 있었다. 요즘은 국가대표 선발 쪽으로도 얘기가 나온다는 것 같으니 아주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게 맞을 거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그토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 이제서야 오이카와의 전속이라는 자리를 안정적으로 맡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은 선수 트레이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오이카와는 실업팀에 몸담은지 꽤 오래 된 선수였지만, 어쩌다 보니 오이카와의 전속이 된지는 벌써 해가 넘어가 있었다. 사실 오이카와가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어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고 빠르게 되지는 않았겠지만, 불안정 했던 처음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지금 만큼의 노력에서 딱 절반 정도가 더 필요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이와이즈미는 그 사실을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익숙하지 못한 일을 해내느라 여기저기 발 벗고 뛰어다녔다. 여태까지 배워왔던 것들을 실전에서 사용하게 된다는 것과 한 사람을 케어하게 된다는 건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감을 언제나 어깨 위에 올리고 산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것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라 꽤 힘들었으나, 다시 아무렇지 않아진 것도 전부 오이카와의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와쨩은 나만 봐주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하고 싶었지.'

  '그리고 그렇게 됐잖아.'

  '그래, 그렇지.'

  '이와쨩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이와쨩이 나한테 안 좋은 걸 시킬 리가 없으니까.'


  언제나 그랬잖아. 오이카와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와이즈미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선수 트레이너란 선수들의 건강이나 재활 등을 관리하는 직업이었으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덕에 건강이나 재활 외에 오이카와의 피지컬이나 컨디션 같은 것들의 관리도 맡고 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해 나가면서도 언제나 떠올리고 있던 것들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오이카와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 생각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 왔다. 제 실수 하나로 망칠 수는 없는 거였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걸 오이카와에게는 말 한 적이 없었지만,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금세 눈치 챘던 걸지도 몰랐다. 제게 그렇게 말해 주던 오이카와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굴던 이와이즈미가 결국에는 제 앞에 자리한 한없이 사랑스러운 이를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저를 바라보는 그 동그란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신뢰가 흘러넘치는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에게 나름 격려 아닌 격려를 받고 나서는 힘들었던 것들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제 역량을 바로 펼치는 이와이즈미에 그동안 저를 묘하게 바라보던 시선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고까워 보일만도 했다. 이제 막 트레이너가 된 녀석이 한창 주가를 달리는 선수의 전속이 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겠지. 다 알고 있었어도 이와이즈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너희가 어떻게 하던 간에 오이카와는 절대 너희를 전속으로 안 뒀을 텐데. 그 사실에 묘한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괜실히 웃어버렸던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지나 한창 바쁜 연 초도, 언제나 긴장감 넘치는 배구 시즌도, 여유 넘치는 휴식기도. 이제 막 익숙해지려던 참에 이렇게 웃기지도 않는 일이 생겨버렸다. 이와이즈미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한창 바쁘던 연 초 때문에 이와이즈미도, 배구 시즌이 한창이던 오이카와도. 두 사람 다 최근에는 쉬는 날이라곤 없이 살아왔다.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나가는 시간도 제각각이라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 했던 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까마득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드디어 갖게 된 쉬는 날이었는데. 이와이즈미는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손을 어쩔 줄 몰라 쥐락펴락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어렵게 생긴 쉬는 날에 오이카와는 물론이고 이와이즈미도 꽤나 들떠 있던 참이었다. 서로 바쁘기는 더럽게 바빠서 출근 할 때 잠깐, 스쳐 지나가다 잠깐, 잠들기 전에 잠깐. 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불만이 가득했던 건 오이카와 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옆에 있던 사람이 옆에 없다는 건 꽤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보고 싶은 거야 당연했고, 한 집에 살면서 함께 잠들지 못한 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잔뜩 기대했던 쉬는 날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제 쉬는 날을 방해한 녀석을 용서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갖는 쉬는 날에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신나서 조잘조잘 떠들던 오이카와와 밤늦게까지 어울려 주던 게 바로 몇 시간 전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같이 한 침대에 누워, 오늘은 뭘 할지 조잘 거리던 게 꽤나 귀여워서 기꺼이 어울려 주겠다고 했던 게 바로 몇 시간 전이었건만. 그런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계획은, 새벽 늦게 보내진 메일로 인해 전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으응…. 이와쨩, 나가?'

  '어어. 아직 아침이니까 더 자.'


  오랜만에 같은 침대에서, 제 연인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오이카와를, 차마 깨울 수는 없어서 제 나름대로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졸음 가득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것에 제 노력에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어쩔 수 없었던 건가 싶었다. 제 연인의 물음에 오늘 새벽, 갑자기 잡힌 계획 회의 안내 메일로 쉬는 날 이른 아침부터 출근 준비를 하던 이와이즈미가 눈도 뜨지 못한 오이카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며 답했다. 


  '으응, 아니야…. 이와쨩 회의만 끝나면 일 없는 거지?'

  '어어, 쉬는 날 불러내서 미안하다더라.'

  '그럼 나랑 같이 나가서, 이와쨩 일 끝나면 오랜만에 데이트 하러 갈까?'


  아직까지 졸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오이카와의 눈은 언제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말에 작게 웃어 보이던 이와이즈미가 침대에 누워서 저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오이카와를 일으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출근 아닌 출근을 하는 이와이즈미의 ―휴일의 느닷없는 출근이었으니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겠다며 서로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으려고 안달이었다.― 단단한 품에 잔뜩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장난스럽게 내려앉는 입술에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려댔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함께하며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와이즈미가 회의를 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뒤로부터 이상해졌다.


  '오이카와.'

  '…우시와카쨩? 우시와카쨩이 여긴 어쩐 일이야?'

  '? 무슨 소리냐 오이카와. 네가 훈련에 나오지 않은 거다.'


  회의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오이카와가 근처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야, 우시와카쨩? 저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오이카와가, 제 옆에 선 우시지마를 바라봤다. 우시와카쨩이 여긴 어쩐 일로? 무슨 소리냐 오이카와, 오늘 훈련에 나오지 않았던 건 너다. 저를 바라보며 시종일관 찌푸려진 얼굴을 하는데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지, 평소의 그 답답한 ―오이카와가 우시지마의 얼굴을 논할 때면, 매번 빼먹지 않던 표현이었다.― 얼굴을 하고서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더랬다. 뭐?! 우시지마의 말에 오늘이 분명 휴일임을 알고 있던 오이카와가, 화들짝 놀라서는 이미 훤히 꿰고 있는 스케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리고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볼게 있었는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매번 하는 말이 있다는 거였다. 그건 바로 우시지마나 카게야마 같은 부류의 ―그러니까, 눈새들의― 말은 그냥 넘겼다간 후에 큰일이 난다는 거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와쨩도 두 번은 생각해보고 행동하라고, 오이카와가 씩씩 거리며 돌아올 때면 매번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이와이즈미에게 매번 꺼내던 오이카와는, 차마 두 번을 생각해 보기도 전에 우시지마의 무지막지한 힘에 이끌려 훈련이라는 명목 하에, 이와이즈미가 회의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공을 올려주고 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간신히 가라앉혔던 열이 다시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후….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친다. 언제부터였는지 얌전하던 다리를 달달 떨던 이와이즈미가 드디어 반짝거리며 제 존재를 알리는 휴대폰을 단숨에 집어 들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어, 끝났냐."

  "아니이, 끝나려면 아직."

  "뭐? 아직도 안 끝났다고?"


  받자마자 두서없이 튀어나온 목소리 끝이 조금은 갈라져 있었다. 제 물음 뒤로 힘없이 들리는 대답에 진심으로 놀란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 졌다. 아직도 안 끝났다고? 이걸 어쩌지. 훈련이고 뭐고 그냥 몰래 끌고 나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앉아, 점점 이상한 쪽으로 빠지는 생각을 바로 잡은 건, 뒤이어 들리는 오이카와의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응! 그런데 힘들어 죽겠고, 어차피 원래 있던 일정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이 상태로 집에 가려고!"


  그래서 말인데 이와쨩, 쉬는 날에도 불려 나온 불쌍한 오이카와 씨 좀 데리러 와 줄래?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숨길 수 없는 장난스러움을 담고 있는 탓에 이와이즈미가 어쩔 수 없이 웃어버렸다. 와 줄 거지? 뭐가 더 필요해, 본부대로.